2009년 10월 12일 월요일

무사와 농부


 
어떤 무사가 자신이 섬기던 주군을 잃고, 술집에 가서 심각하게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 농부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가 그 무사의 탁자를 엎지르고 만다. 농부는 급히 용서를 빌었지만, 무사는 참지 못하고 결투 신청을 했다. 무사는 자신을 피하면 끝까지 쫓아가서 끝장을 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는 돌아갔다.
 
결투 날짜는 일주일 후였다. 농부는 일단 근처 검도장을 찾아가 검도 사범에게 이런 사정을 이야기했다. 검도 사범은 승산이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다만 죽더라도 그 무사와 함께 죽을 방법을 일러주겠다고 했다. 검도 사범은 단 한 가지의 자세와 하나의 베기 동작만 반복하여 가르쳤다.
 
"무사는 공격하기 전에 당신의 실력을 알아보려 할 것이요. 하지만 절대 움직이지 마시오. 그에게 다가가거나 칼을 휘두르지도 말고 기다리기만 하시오. 그가 정말 당신을 죽이려고 칼을 들 때에만 움직이도록 하시오."
 
어느 모로 보나 살아남기는 글렀다고 생각한 농부는 어쩔 수 없이 결투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고 베기 동작만 줄곧 연습했다.
 
마침내 결투의 시간이 다가왔다. 마주한 무사는 노련한 자세로 다가왔다. 그리고 농부를 가운데 에 두고 원을 그리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농부를 자극하려고 허점을 살짝 보이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농부는 꼼짝하지 않고 검객을 유심히 바라볼 따름이었다. 무사를 벨 기회는 오직 단 한번뿐이며,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었다.
 
한참 후 무사가 잠시 뒤로 물러서더니 앞으로 달려 나왔다. 이제 정말 칼을 휘두를 참인 듯 했다. 하지만 칼은 공중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고요가 뒤따랐다. 무사는 농부의 얼굴에서 그 어떤 공포나 두려움도 읽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칼을 거두며 물러섰다.
 
"내가 도전했을 때, 당신은 시골뜨기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고 나는 분명 당신을 무시하고 있었소. 하지만 오늘 나는 그대의 방어를 깨뜨릴 수 없었소. 어떤 공격도 나를 함께 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소. 당신은 분명 무사의 정신을 지녔고, 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용무는 여기서 끝났소."
 
그는 깊이 허리를 숙여 절을 하고 돌아서서 가 버렸다. 농부는 여전히 그대로 정지한 채 서 있었다. 그의 신경은 오직 한 번의 베기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참고도서: 무도의 전설과 신화(피터 루이스, 황금가지)